Читать книгу «용의 숙명 » онлайн полностью📖 — Моргана Райс — My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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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토르는 허공을 갈라 얼굴을 수면으로 향하고 휘몰아치는 불의 바다 속으로 다이빙했다. 바닷물 속으로 깊이 잠수한 토르는 이내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고 뜨거운 바닷물의 감촉을 온 몸으로 느꼈다.

토르는 잠시 바닷물 속을 들여다봤고 이내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알 수 없는 온갓 종류의 크고 작은 괴상한 생김새의 바다 괴물이 시야 속에 들어왔다. 바다 생물로 가득한 바다였다. 보트로 안전하게 이동할 때까지 바다 괴물의 공격이 없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토르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 숨을 들이쉬며 물에 빠진 부대원을 찾았다. 때마침 물에 빠진 부대원이 허우적거리다 기력을 잃고 물 속으로 가라앉는 찰라 토르는 부대원을 발견했다. 몇 초만 늦었더라도 그는 그대로 익사했을 게 분명했다.

토르는 부대원에게 다가가 그를 붙잡은 뒤, 두 사람 모두 수면 위로 고개를 들어 숨을 쉴 수 있도록 한쪽 팔로 뒤에서 그의 쇄골을 감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 주변을 돌아보니 놀랍게도 크론이 보였다. 크론이 토르를 쫓아 바다 속으로 따라 들어온 게 분명했다. 작은 표범은 토르 옆에서 칭얼거리며 열심히 헤엄을 쳤다. 토르는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을 쫓아온 크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 손에는 부대원을 붙잡고 한 손은 헤엄을 쳐나가야 했기에 크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붉은 소용도리가 치는 물살이 험했고 괴상한 생물체들이 토르 주변에서 수면 위로 몸을 내밀었다 이내 사라졌지만 토르는 주변 환경에 최대한 마음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4개의 다리와 두 개의 대가리를 가진 흉악한 생김새의 보라 빛 바다괴물이 토르 가까이에서 모습을 보이며 쉭쉭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에 토르는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르의 시선은 20미터 거리에 있는 보트를 향했다. 한 손에는 부대원을 이끈 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맹목적으로 헤엄쳤다. 부대원은 온 몸을 마구 뒤틀며 소리를 질러댔고 이에 토르는 두 사람 모두 그대로 물 속에 잠겨버릴 지도 몰라 불안했다.

“가만히 좀 있어!” 토르는 부대원이 잠잠해지길 간절히 바라며 거칠게 소리질렀다.

마침내 부대원이 잠잠해지자 토르는 잠시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내 바로 옆에서 커다란 물살이 일어나는 소리에 토르는 고개를 돌렸다. 또 다른 바다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 개의 촉수를 지닌 작은 노란색 생명체였다. 대가리가 사각형인 모습이 눈에 뛰었다. 바다 괴물은 토르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돌진했다. 대가리가 각지지만 않았다면 바다에 사는 방울뱀이라 착각했을 정도로 모습이 흡사했다. 근접하는 바다 괴물을 보며 토르는 몸을 감쌌다. 그러나 바다 괴물이 자신을 물 거란 예상과 달리 바다 괴물은 아가리를 크게 열어 토르에게 바닷물을 쏟아냈다. 토르는 물살에 감겼던 눈을 뜨며 시야를 확보했다.

바다 괴물은 그렇게 토르 주변을 에워싸고 이리저리 헤엄쳤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토르는 더욱 사력을 다해 헤엄쳐나갔다.

진전이 보였다. 토르는 보트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때마침 또 다른 바다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얇고 긴 주황빛을 띠는 형상에 아가리에는 날카로운 두 개의 송곳니가 나 있었고 12개의 작은 다리가 뻗어있는 생명체로, 뒤로는 기다란 꼬리를 사방으로 휘감고 있었다. 마치 정면으로 서있는 바다가재 모습을 닮아 있었다. 바다 괴물은 물 곤충처럼 물가를 따라 토르 가까이 다가와 몸을 돌리며 꼬리를 휘저었다. 꼬리가 토르의 한쪽 팔을 스치며 토르의 팔을 휘갈겼고 그와 동시에 꼬리에 붙은 촉수가 토르의 팔을 그대로 파고들어 토르는 커다란 고통을 토로했다.

바다 괴물은 계속해서 앞뒤로 이동하며 쉬지 않고 토르를 찔러댔다. 토르는 당장이라도 검을 꺼내 공격하고 싶었으나 움직일 수 있는 손은 한 손뿐이었고 할 수 있는 건 그 손으로 헤엄을 치는 것뿐이었다.

토르 옆에서 헤엄치던 크론이 바다 괴물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크론이 털을 바짝 세우고 용감하게 바다 괴물을 향해 달려들자 위협을 느낀 바다괴물은 물 속으로 종적을 감췄다. 토르는 겨우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바다 괴물은 크론을 피해 반대편에서 토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론은 바다 괴물을 향해 방향을 바꿔 헤엄쳤고 이를 잔뜩 드러내고 잡으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토르는 죽기살기로 헤엄쳤다. 바다 속에서 빠져 나오는 것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영원 같던 시간이 지났고 토르는 보트에 도착했다. 파도에 맞서 보트는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보트 위에는 나이가 많은 부대원 두 명이 타고 있었다. 기존에 토르 또는 토르 일행과 일면이 없던 부대원들이었다. 그들은 토르를 돕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두 부대원은 자신들의 재량에 따라 몸을 앞으로 내밀어 토르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토르는 물에 빠졌던 부대원을 먼저 구출했다. 보트 위의 부대원들은 물에 빠졌던 부대원의 팔을 잡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내 토르는 크론에게 팔을 뻗어 크론의 배를 들어 물 밖 보트 위로 크론을 던져 올렸다. 크론은 네 발로 나무로 만든 보트의 표면을 긁어 마찰 소리를 내며 미끄러짐을 막았다. 크론의 털에서 물방울이 떨어졌고 크론은 몸을 흔들어 물기를 털어냈다. 젖어있는 나무 보트 위에서 잠시 미끄러지는 듯 했지만 이내 중심을 잡았다. 크론은 곧장 보트 가장자리로 달려가 토르를 찾았다. 크론은 바다를 바라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토르는 나이 많은 부대원 한 명의 손을 잡았다. 부대원이 토르를 끌어 올리던 찰라, 토르는 한쪽 발목과 허벅지에 단단한 근육이 감기는 느낌을 받았다. 뒤돌아 아래를 살핀 토르는 심장이 멎을 뻔했다. 연노란 푸른 빛의 오징어 형태를 한 바다 괴물이 토르의 다리를 촉수로 단단히 감고 있었다.

살 속으로 촉수가 파고드는 순간 토르는 고통의 신음소리를 질렀다.

신속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목숨이 날아갈 상황이었다. 토르는 허리에 찬 단검을 뽑아 몸을 구부려 촉수에 내리꽂았다. 그러나 단단하고 두꺼운 촉수를 단검으로 찌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토르의 행동에 바다괴물은 더욱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수면 위로 무시무시한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빛 형상에 눈이 없었고 기다란 목 위로 커다란 두 개의 하관을 벌려 토르를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토르는 다리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무슨 수를 강구해야 했다. 나이 많은 두 명의 부대원들이 사력을 다해 토르를 끌어올렸지만, 토르는 점점 미끄러져 토르의 몸이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론은 쉼 없이 소리를 질렀고 털을 바짝 세운 채 금방이라도 바다 속으로 뛰어들 기세로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설사 크론이 뛰어들어 공격한다 하더라도 바다 괴물에게는 소용이 없을 게 분명했다.

나이 많은 부대원 한 명이 앞으로 몸을 빼고 크게 외쳤다”

“몸을 피해!”

이에 토르는 몸을 숙였고, 나이 많은 부대원들을 물 속의 바다 괴물을 향해 창을 던졌다. 창은 빠르게 날아갔지만 목표물을 놓쳤다. 부대원들이 던진 화살은 바다 괴물에 아무런 타격을 가하지 못하고 물 속으로 가라앉을 뿐이었다. 바다 괴물을 창으로 공격하기엔 바다 괴물의 움직임이 굉장히 날렵했고 또 형체가 너무 가늘었다.

순간 크론이 보트에서 뛰어올라 물 속으로 몸을 날렸다. 크론은 바다 괴물 위에 안착해 날카로운 이빨로 바다 괴물의 목덜미를 공격했다. 크론은 바다 괴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바다 괴물의 목덜미에 이빨을 단단히 고정했다.

그러나 모든 게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했다. 바다 괴물의 피부는 상상도 못할 만큼 질기고 단단했다. 바다 괴물은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크론을 멀리 날려버렸다. 그러는 동시에 토르의 허벅지를 계속해서 단단히 조였다. 벗어날 수 없는 덫에 다리가 끼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 이상 숨을 쉬기가 고통스러웠다. 다리를 감싼 촉수에서 타는 듯한 고통이 전해졌고 이내 다리가 잘려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토르는 자신을 끝까지 붙잡고 있던 나이 많은 부대원을 손을 놓고 허리에 찼던 작은 단검을 빼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토르는 단검을 빼내자 마자 손에서 놓쳐버렸다. 순간 채 놀라기도 전에 이미 토르의 얼굴은 바닷물 속에 잠겨버렸다.

토르는 보트에서 멀어져 바닷속으로 끌려들어갔다. 바다 괴물이 토르를 보트 반대편으로 빠르게 끌고 들어갔다. 토르는 속절없이 보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의 눈앞에는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보트의 형상만이 아른거렸다. 이후 토르가 기억할 수 있었던 건 바다 속 깊숙이 끌려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토르는 불의 바다 깊숙한 곳으로 끝도 없이 빠져 들어갔다.

제9장

그웬돌린 공주는 활짝 펼쳐진 들판 위를 뛰었다. 공주의 곁에는 그녀의 아버지, 맥길 왕이 함께였다. 어린 시절의 공주였다. 공주는 10살쯤 되어 보였고, 그만큼 맥길 왕도 젊어 보였다. 맥길 왕의 턱수염이 짧았고 흰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젊어 보였고 피부에는 주름 없이 광채가 났다. 맥길 왕은 근심 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웬돌린 공주의 손을 잡고 공주와 함께 벌판을 뛰며 거침없이 웃었다. 공주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공주가 알던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맥길 왕은 그웬돌린 공주를 번쩍 들고 그의 어깨에 공주를 앉힌 뒤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았다. 맥길 왕은 더욱 크게 웃었고 그웬돌린 공주는 정신 없이 깔깔거렸다. 아버지의 어깨에 앉은 공주는 안락하고 편안했다. 이 순간이 계속되어 멈추지 않길 바랬다.

그러나 맥길 왕이 그웬 공주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눈부시게 빛나던 태양은 사라지고 땅거미가 내려 앉았다. 그웬 공주의 두 발이 바닥에 닿자, 들판의 꽃들이 자취를 감췄고 공주의 발목까지 진흙이 덮였다. 몇 발자국 옆에 있던 맥길 왕은 하늘을 정면으로 보며 진흙 위에 곧게 누웠다. 방금 전과 달리 아주 많이 늙은 모습이었고 그렇게 진흙 바닥에 고정되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누워있음에도 맥길 왕의 머리 위에 놓인 왕관은 빛을 반짝였다.

“그웬돌린,” 맥길 왕이 힘겹게 말을 뱉었다. “나의 딸. 나를 도와다오.”

맥길 왕은 진흙더미 속에서 한 손을 위로 뻗고 절실히 공주를 찾았다.

공주는 황급히 아버지를 돕기 위해 서둘렀다. 아버지에게 달려가 손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은 그대로 그 자리에 묶여 있었다. 발 밑을 보니 진흙 속에서 공주의 발이 꼼짝 없이 고정됐고 진흙은 순식간에 말라붙어 갈라졌다. 공주는 헤어나오기 위해 계속해서 발버둥쳤다.

그웬 공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떠보니 왕실의 난간에서 왕국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무언가가 달랐다. 왕국은 예전과 달리 화려함과 축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무질서한 묘지와 같은 모습이었다.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자랑했던 왕국의 모습이 사라지고 이제는 저 끝까지 묘지일 뿐이었다.

공주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뒤를 돌아본 공주는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쓴 암살자가 다가오는 모습에 그대로 멈춰 버렸다. 암살자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리던 후드를 벗어 던졌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한쪽 눈이 없었고 이리저리 난 눈가의 흉터가 인상 깊었다. 그는 으르렁 거리며 한 손을 들어 번쩍이는 단검을 높이 쳐들었다. 단검의 칼끝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암살자의 움직임이 너무나 민첩해 공주는 제대로 숨지도 못했다. 공주는 이제 곧 죽게 되리란 생각에 몸을 잔뜩 웅크렸고 암살자는 있는 힘껏 단검을 내리 꽂았다.

그러나 순간 암살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공주가 눈을 뜨고 위를 바라보니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맥길 왕은 시체의 형태로 나타나 공중에서 암살자의 팔목을 쥐어 잡고 있었다. 맥길 왕이 잡고 있던 손을 비틀어 끝내 암살자는 단검을 떨어뜨렸고, 맥길 왕은 암살자를 어깨에 들춰 메고 난간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웬 공주는 허공으로 떨어지며 비명을 지르는 암살자의 절규를 들었다.

맥길 왕은 공주에게 몸을 돌려 공주를 지그시 바라봤다. 한 손으로는 부드럽고 단단하게 공주의 어깨를 짚고 있었지만 맥길 왕의 표정이 단호했다.

“네가 여기 있으면 위험하단다,” 맥길 왕이 경고했다. “여긴 안전하지 않아!” 맥길 왕이 고함쳤다. 공주의 어깨를 짚고 있던 맥길 왕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 공주는 아픔을 호소했다.

그웬 공주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공주는 침대에서 허리를 세우고 상반신을 일으켰고 암살자를 찾기 위해 자신의 침실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러나 침실 안은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깊은 적막이 새벽을 말해주고 있었다.

공주는 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쉬었다. 공주는 잠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 침실 안을 걸었다. 서둘러 작은 석조 대야로 걸음을 옮겨 계속해서 찬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그리고는 벽에 몸을 기댔다. 공주는 그렇게 더운 여름 새벽 날, 차가운 석조 바닥에 맨발을 디디고 발 끝에서 전해지는 시원함을 온전히 느꼈다. 공주는 애써 정신을 추슬렀다.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꿈이었다.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아버지로부터의 경고가 분명했다. 메시지였다. 공주는 순간 지금 당장 왕실을 떠나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절대 다시는 돌아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왕실을 떠나는 건 그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공주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그러나 공주가 눈을 감을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경고를 보내오는 게 분명했다. 혼란스러운 꿈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다.

공주는 창 밖으로 첫 번째 태양의 일출을 바라봤다. 이내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맑게 해줄 유일한 장소, 왕의 강을 떠올렸다. 공주는 그곳에 가야만 했다.

*

그웬돌린 공주는 얼음처럼 차가운 왕의 강물 속에 숨을 참고 몸을 구부려 계속해서 얼굴을 적셨다. 공주는 어린 시절 발견한 바위 사이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천연 풀장 같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상부에 위치한 산 속의 샘에 가려져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공주는 물 속으로 머리를 밀어넣었다. 차가운 강물의 물살이 공주의 머리칼을 흔들며 냉기를 뼈 속까지 전달했다. 차디찬 강물이 그녀의 알몸을 정화해주는 느낌이었다.

이 외딴 곳을 발견한 건 오래 전이었다. 높은 산 속 나무 사이에 가리워진 이곳은 작은 고원으로, 강물의 물살이 정체되어 깊고 맑은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공주의 머리 위로는 강물이 작은 폭포처럼 쏟아졌고 그렇게 쏟아진 강물은 계속해서 흐르다 이 고원에서 고이며 약한 물살을 일으켰다. 호수는 깊었지만 호수를 담고 있는 바위는 부드러웠다. 쉽게 노출되지 않는 아늑한 장소였기에 걱정 없이 알몸으로 몸을 담갔다. 공주는 여름이 되면 매일 아침 해가 뜰 무렵 이곳을 찾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특히 오늘같이 꿈자리가 사나운 날에는 더욱 서둘러 이곳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꿈이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인지 또는 경고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공주의 어지러운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인지 또는 정말 대비를 하도록 찬스를 주려는 건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웬돌린 공주는 따뜻한 여름 아침 공기를 마시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주변에서 나무 위의 새들이 짹짹거렸다. 공주는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바위에 기댔다. 얼굴을 제외한 몸은 여전히 물 속에 담그고 튀어나온 바위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공주는 양 손으로 얼굴에 물을 적셨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길고 긴 머리카락을 쓸었다. 강물의 표면 위로 하늘이 반사됐다. 두 번째 태양이 이미 하늘 위로 솟고 있었고 강물 위로 뻗은 나무들 사이로 공주의 얼굴이 비쳤다. 흔들리는 강물의 표면 위로 공주의 두 눈이 푸른빛으로 빛났다. 공주는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느꼈다. 공주는 고개를 돌려 다시 꿈에 대해 생각했다.

공주는 아버지의 암살자가 있는, 첩자들이 가득한, 음모가 들끓는 왕실에 머무는 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개리스 오빠가 왕으로 있는 왕실이었다. 개리스 오빠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늘 앙심을 품고 피해망상에 젖어있었다. 또한 그 누구보다 질투와 시기심이 강했다. 그는 모두를 적으로 여겼으며 특히 그웬 공주에겐 더욱 적개심을 품었다. 그 어떤 일이 공주에게 일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공주는 자신의 안전이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안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도망갈 인물이 아니었다. 공주는 아버지를 암살한 자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만약 그가 개리스 오빠라면, 더더욱 오빠가 법의 심판을 받을 때까지 도망칠 수 없었다. 공주는 아버지를 해한 암살자가 잡히기 전까지 아버지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 평생 정의를 구호처럼 언급했었다. 그리고 아버지야말로 세상 그 모든 사람들보다 죽음 앞에 정의를 밝힐 자격이 충분했다.

그웬 공주는 고드프리 오빠와 함께 만났던 스태픈을 다시 떠올렸다. 분명 그는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도대체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공주는 때가 되면 그가 스스로 말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끝내 말을 하지 않는다면? 공주는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의 암살자를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이제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했다.

공주는 마침내 물 밖으로 나와 알몸으로 바위에 올라갔다. 아침 바람에 몸이 떨렸다. 공주는 커다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늘 그래왔든 손을 뻗어 나뭇가지에 걸어둔 수건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수건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공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주는 나무 뒤에서 물에 젖은 알몸으로 그 자리에 황당하게 서있었다. 분명 언제나 그래왔듯 같은 자리에 수건을 걸어 두었었다.

당황한 공주는 추위에 떨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던 순간 공주는 머리 뒤로 인기척을 느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흐릿한 움직임이 느껴졌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뒤에 한 남자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심장이 철커덩 내려앉았다.

찰나의 순간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 한 순간에 꿈속에서처럼 검은 망토를 입은 사내가 공주의 뒤에 다가섰다. 그는 공주를 뒤에서 붙들었고 공주가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앙상한 손으로 공주의 입을 막았다. 공주는 사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내는 더욱 가까이 공주를 조여왔고, 공주는 꿈에서 봤던 그대로 칼끝이 붉게 빛나는 단검을 쥐고 있는 그의 모습을 포착했다. 결국 그녀의 꿈은 경고였다.

칼끝이 공주의 목을 겨눴다. 칼끝을 겨눈 손에 굉장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공주가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칼 끝에 그대로 목이 베어 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숨을 쉬기 위해 애를 쓰는 공주의 두 눈가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공주는 스스로에게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너무 어리석었다. 좀 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어야 했다.

“내 얼굴을 알아보겠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가 앞으로 바짝 다가오자 그에게서 뜨겁고 역겨운 구취가 전해졌다. 그의 얼굴을 살핀 공주는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꿈속에서 본 그 남자였다. 한쪽 눈이 없고 흉터를 지닌 바로 그 남자였다.

“알겠어,” 공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주에게 너무나 익숙한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을 알진 못했지만 공주는 그가 집행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층민인 그는 개리스 오빠가 어렸을 때부터 어울리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개리스 오빠의 심복이었다. 개리스 오빠는 누구든지 겁을 주거나 고문을 하거나 죽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를 보냈다.

“당신은 내 오빠가 부리는 개야,” 공주가 공격적으로 사내에게 비아냥거렸다.

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치아가 몇 개 빠져있었다.

“난 그분의 심복이지,” 사내가 대답했다. “네가 나의 경고를 잊지 않도록 무기를 함께 가지고 왔지. 폐하께서 원하시는 건 네가 더 이상 파헤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네가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네게 이 경고를 끝내는 동시에 너의 반반한 얼굴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칼자국이 새겨져 있을 테니 말이다.”

사내는 으르렁 거리며 칼을 높이 들어 공주의 얼굴을 향해 내리 꽂았다.

“안돼!” 공주가 몸서리를 치며 비명을 외쳤다.

공주는 난도질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칼끝이 공주의 얼굴에 닿기 전에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딘가에서 새의 울음 소리가 들렸고 하늘에서 새 한 마리가 사내를 향해 순식간에 하강했다. 공주는 찰나의 순간에 새의 정체를 확인했다:

에스토펠레스였다.

에스토펠레스는 발톱을 세우고 빠르게 날아와 사내의 얼굴을 할퀴었다. 덕분에 사내는 손에서 단검을 놓쳤다.

그웬 공주의 뺨에 단검이 꽂힌 순간이었다. 칼끝이 공주의 뺨을 뚫으려던 순간 칼끝의 방향이 바뀌었다.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단검을 놓쳤고 양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그웬 공주는 그 순간 하늘에서 반짝이는 하얀 빛을 목격했다. 나뭇가지 위로 태양이 반짝이며 에스토펠레스가 날아갔다. 그 순간 공주는 깨달았다. 아버지가 에스토펠레스를 보냈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공주는 지체하지 않았다. 공주는 뛰어 올라 상체를 뒤로 젖히고 호신술 스승이 알려준 그대로 맨발로 정확하고도 강력하게 사내의 명치를 가격했다. 사내는 그대로 몸을 구부렸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공주의 가격에 고통스러워 했다. 공주는 어렸을 때부터 반복 훈련을 통해 호신술을 몸에 익혔다. 공격자를 물리치기 위해 그만큼 힘이 셀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녀의 가장 강한 허벅지 근육을 사용하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정확히 가격하기만 하면 됐다.

사내가 그대로 서서 웅크리고 있는 그 때 공주는 앞으로 다가가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 쥐고 다시 한번 정확하게 조준한 뒤 무릎으로 사내의 코를 가격했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코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나왔고 그 바람에 공주의 다리에도 피가 튀었다. 사내는 바닥에 꼬꾸라졌다. 공주는 사내의 코뼈를 부러뜨렸다.

뒷일을 대비해 사내를 여기서 끝장내야 했다. 단검을 쥐고 그의 심장에 꽂아야 했다.

그러나 공주는 어서 옷을 챙겨 입고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가 죽어 마땅하긴 하지만 공주는 자신의 손에 직접 그의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

공주는 검을 주워 강물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옷을 온 몸에 감아 알몸을 가렸다. 이 곳에서 벗어날 준비를 마치고는 떠나기 전 다시 돌아가 마무리를 지었다. 공주는 있는 힘껏 그의 사타구니를 발로 가격했다.